스타트업과 플랫폼
1990년대 말, 한국에도 인터넷 붐이 왔다. 코스닥이 폭등했고, "닷컴"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2000년 미국 나스닥 붕괴의 충격파는 태평양을 건너왔고, 국내 수백 개의 인터넷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 살아남은 자들이 오늘날의 네이버와 카카오다.
네이버의 출발은 1999년이었다. 삼성SDS 출신 이해진이 NHN(네이버-한게임) 공동대표로 나서며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경쟁자는 다음(Daum)이었다. 다음은 이미 한메일 서비스로 국내 이메일 1위를 달리고 있었고, 네이버는 한참 뒤처진 후발 주자였다. 역전의 계기는 '지식iN'이었다. 사람들이 직접 질문하고 답변하는 이 서비스가 검색 트래픽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면서, 2000년대 중반 네이버는 국내 검색 1위로 올라섰다.
카카오의 출발점은 더 초라했다. 김범수는 네이버의 전신 격인 한게임을 NHN에 매각한 뒤, 2006년 아이위랩이라는 작은 회사를 차렸다. 모바일 소셜 게임을 만들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자본금을 거의 다 소진한 2010년, 마지막 베팅처럼 내놓은 것이 카카오톡이었다. 출시 이후 입소문이 나면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문자 요금이 건당 20~30원이던 시절에 무료 메시지는 강력한 가치 제안이었다.
플랫폼 기업의 성장 공식은 전통 제조업과 다르다. 공장도 땅도 없이, 이용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중간자' 역할만으로 돈을 번다. 핵심은 이용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네트워크 효과다. 카카오톡이 5,000만 명의 한국인을 품에 안는 순간, 그 플랫폼 위에 올라탄 모든 서비스는 별도의 마케팅 비용 없이 막대한 잠재 고객을 얻게 됐다.
이용자가 늘수록 플랫폼의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 카카오톡의 경우 이용자가 이미 쓰는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가입했다.
무료로 이용자를 모은 뒤,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 수수료를 부과. 카카오 선물하기는 뷰티 카테고리 수수료가 30%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카카오모빌리티 가맹 수수료는 20%에 달했다.
이용자의 검색·소비·이동 데이터를 광고·추천 알고리즘에 활용. 무료 서비스는 데이터를 대가로 한 교환이다. 네이버 쇼핑 검색 결과가 광고 입찰로 결정되는 구조가 대표적이다.
카카오의 확장 공식: 기존 플랫폼 지위를 발판으로 인접 시장 진입 → 무료 또는 저가로 점유율 확보 → 독점적 지위 달성 후 수익화. 택시·대리운전·꽃배달까지 침투했다.
카카오의 확장 전략은 기존 독점적 플랫폼 지위를 활용해 시장에 진입한 뒤 무료로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이후 가격과 수수료를 올리는 방식이다. 카카오택시가 대표적 사례다. — 국내 언론 플랫폼 독점 분석 기사, 2021
네이버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카카오가 메신저를 통한 수평 확장을 택했다면, 네이버는 검색-콘텐츠-커머스-금융으로 이어지는 수직 통합에 집중했다. 네이버 검색을 통해 쇼핑 정보를 보고, 네이버페이로 결제하고, 네이버플러스 멤버십으로 혜택을 받는 생태계다. 이용자가 네이버 밖으로 나갈 이유를 없애는 구조다. 이를 비판하는 시각에서는 네이버의 '자사 서비스 우대'를 검색 중립성 위반으로 지적했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2022년 10월 15일 오후 3시 30분경, 경기도 판교의 SK C&C 데이터센터에서 화재가 났다. 카카오 서버가 멈췄다. 카카오톡, 카카오맵, 카카오페이, 카카오택시—사실상 국민 일상의 절반이 한꺼번에 멈추는 사건이 벌어졌다. 네이버가 4시간여 만에 복구한 것과 달리 카카오는 사흘이 넘어서야 완전히 정상화됐다. 이 '먹통 사태'는 단순한 기술 장애가 아니었다. 카카오가 이미 공공 인프라 수준의 독점적 위치에 올라섰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 타격은 법정에서 왔다.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의장은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시세조종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 공개매수 기간 중 경쟁사 하이브의 주가를 누르기 위해 SM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는 혐의였다. 카카오는 계열사 임원들의 스톡옵션 조기 행사 논란,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혐의 등이 연달아 터지며 거버넌스 전반에 의문이 제기됐다.
| 사건 | 시기 | 파장 |
|---|---|---|
| 카카오 먹통 사태 | 2022년 10월 | 플랫폼 독점의 사회적 위험성 가시화, 온플법 논의 재점화 |
| 스톡옵션 먹튀 논란 | 2022년 | 카카오뱅크 IPO 직후 임원 대규모 주식 매각, 소액주주 반발 |
| 카카오모빌리티 분식회계 혐의 | 2023년 | 금융감독원 감리, 운임 전체를 매출로 계상하는 방식 문제 제기 |
| 김범수 구속 | 2024년 | SM 인수 과정 시세조종 혐의, 창업자 사법 리스크로 경영공백 발생 |
| 계열사 다운사이징 | 2024~2025년 | 계열사 147곳 → 115곳으로 축소, '문어발' 이미지 탈피 시도 |
카카오와 네이버의 분기점은 이 시기에 벌어졌다.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와 신뢰 위기를 관리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동안, 네이버는 AI 전환이라는 다음 판에 베팅했다. 2023년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고, 검색과 커머스에 AI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2025년 기준 네이버의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한 반면, 카카오는 일부 사업에서 역성장을 기록했다. 한때 묶어 부르던 '네카오'라는 단어가 점점 어색해지는 이유다.
2026년 4월 현재, 두 회사는 전혀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네이버는 2025년 연간 커머스 매출이 전년 대비 약 26% 증가한 3조 6,884억 원을 기록했고,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한 AI 전환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이버는 GPT-4.1과 견주는 한국어 특화 추론 모델 '하이퍼클로바X 씽크'를 공개하며 소버린 AI(자국어 특화 인공지능)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2026년 4월을 기점으로 대화형 AI 서비스 'CLOVA X'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등, AI 플랫폼 전략의 조정도 병행되고 있다.
카카오는 2024년 연간 매출 7조 8,738억 원, 영업이익 4,915억 원을 기록하며 외형 성장은 이어갔지만, 창업자 사법 리스크 해소와 신뢰 회복이 더 급한 과제로 남아 있다. 계열사 수를 147개에서 115개 수준으로 줄이며 '코어 사업' 집중 전략을 공언했고, 2025년부터는 카카오톡 기반 AI 서비스 대중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 네이버의 강점: 검색·커머스·클라우드에 AI를 결합한 수직 통합 구조. 한국어 데이터 학습량에서 글로벌 경쟁사 대비 우위를 주장하며 B2B AI 솔루션 시장을 공략 중이다.
- 카카오의 과제: 5,000만 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카카오톡이라는 자산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이를 수익화하는 AI 킬러 서비스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 규제 환경의 변화: 온라인 플랫폼 규제 논의가 지속되고 있으며, 플랫폼의 자사 우대 및 수수료 체계에 대한 공정위 심사가 이어지고 있다. EU의 디지털시장법(DMA)에 상응하는 국내 입법 논의도 진행 중이다.
- 새로운 경쟁 구도: 네이버·카카오 양강 구도에 글로벌 AI 플랫폼(ChatGPT, 구글 AI)이 직접 진입하면서 검색·메신저 시장의 경쟁 지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무조건 네이버에서 검색한다'는 습관이 흔들리는 첫 번째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재벌이 아니라는 말로 출발했다. '수평적 조직', '100인의 CEO 양성', '열린 생태계'. 창업 초기의 언어는 전통 재벌과 달랐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 돌아보면, 플랫폼 독점이 만들어낸 권력 구조는 재벌의 경제적 지배력과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경로는 달랐지만 목적지는 비슷했다.
투자자로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AI 전환의 실질적 수익화 시점이다. 네이버가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만, 이것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매출로 전환될지가 주가의 향방을 결정한다. B2B AI 솔루션 계약 건수, 하이퍼클로바X 기업 도입 사례가 핵심 지표다.
두 번째는 카카오의 신뢰 회복 속도다. 카카오톡 5,000만 이용자라는 자산을 AI로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면 반전의 여지가 있다. 반면 사법 리스크가 장기화되고 킬러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다면, 플랫폼 지위를 기반으로 한 수수료 수익의 성장 한계가 먼저 드러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카카오톡과 네이버 검색이 각자의 생존 전략을 수행하는 전장(戰場)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AI·배터리·바이오, 다음 돈의 흐름은 어디로
한국 기업들은 지금 어디에 다음 판돈을 올려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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