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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2 — 삼성의 돈 | 기업의 역사를 통한 돈의 흐름

legacy-road 2026. 4. 4. 10:39
EP02 — 삼성의 돈 | 기업의 역사를 통한 돈의 흐름
기업의 역사를 통한 돈의 흐름  |  EP02

삼성의 돈

설탕·모직에서 반도체 제국까지 — 한 노인의 도박이 나라를 바꾼 이야기

1983년 2월, 일흔셋의 노인이 도쿄에서 서울로 전화 한 통을 걸었다. "누가 뭐라도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할 것입니다." 당시 한국 언론도, 재계도, 심지어 삼성 내부도 그 선언을 비웃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지금 그 도박의 결과는 한국 수출의 20%를 떠받치는 반도체 제국이 됐다.

① 역사 배경 설탕 장사꾼에서 출발한 이병철의 사업 여정

삼성의 시작은 반도체와 거리가 멀었다. 1938년 경남 마산에서 이병철이 세운 삼성상회는 말 그대로 '트럭으로 청과물과 건어물을 팔던' 무역상이었다. 해방 후 그는 제일제당(1953년)으로 설탕을, 제일모직(1954년)으로 옷감을 만들었다. 당시 전후 한국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가장 확실한 사업이었다. 정부의 특혜 달러로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하는 구조 — 이것이 초기 삼성의 돈줄이었다.

1960~70년대를 거치며 삼성은 보험, 언론(중앙일보), 유통(신세계)으로 뻗어나갔다. 이미 그 시절 이병철은 '다음 사업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었다. 그의 전기를 보면 특이한 점이 있다. 그는 어떤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수개월에서 수년간의 조사와 숙고를 거쳤다. 직관보다는 정보, 배짱보다는 치밀한 계산. 그 사람이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가장 큰 도박'을 결심했다.

전자산업으로의 첫 발걸음

1969년 삼성전자공업 설립 — 이것이 오늘날 삼성전자의 출발점이다. 처음 만든 건 흑백 TV와 선풍기 같은 가전이었다. 1974년에는 이건희(당시 이병철의 아들)가 사재를 털어 부도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하지만 이 시기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름뿐이었다. 독자 기술은 없었고, 조립 수준에 머물렀다.

진짜 전환점은 1982년에 찾아왔다. 이병철은 보스턴대학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18년 만에 미국 땅을 밟았다. 실리콘밸리를 돌아보고, IBM과 HP 공장을 견학했다. 그 눈으로 본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에 흔들리는 장면 — 그것이 이병철에게 무언가를 불어넣었다.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② 돈의 흐름 왜 하필 반도체였는가 — 메커니즘 해설

이병철의 반도체 베팅에는 경제적 논리가 있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넓은 국토도 없었다. 그렇다면 부가가치가 높고, 부피는 작고, 기술로 승부하는 산업이 필요했다. 반도체는 그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 손바닥만 한 칩 하나에 수십만 원의 부가가치가 담겼다.

그런데 이병철이 선택한 건 '시스템 반도체'가 아니라 메모리(D램)였다. 왜? 메모리는 규격이 표준화돼 있어서, 만들기만 하면 전 세계에 팔 수 있었다. 설계 능력 없이 공정 능력과 원가 경쟁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분야였다. 이건 당시 한국의 강점 — 규율 있는 대규모 노동력과 정부-기업 협력 체제 — 에 딱 맞는 선택이었다.

핵심 메커니즘
메모리 반도체는 '치킨 게임'의 산업이다. 불황기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아 생산 원가를 낮추고, 경쟁사가 손을 들 때까지 버텨야 한다. 삼성은 이 게임을 다른 기업보다 잘했다. 이건희 회장 시절 유명한 말이 있다. "불황일 때 오히려 설비투자를 늘려라." 이 역발상이 삼성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을 누른 핵심 전략이었다.

도쿄선언은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병철은 한 달에 두세 차례 '반도체 회의'를 소집했다. 과장급 직원까지 불러 전사적 총력전을 가동했다. 실리콘밸리에 현지법인을 세워 미국에 있는 한국인 과학자들을 끌어왔다. 착공 후 보통 2~3년이 걸리는 기흥 공장을 6개월 만에 완공했다. 그리고 도쿄선언 불과 10개월 만인 1983년 12월,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였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을 한다고?" — 1983년 도쿄선언 직후 한국 재계의 반응

도쿄선언 이후 삼성의 반도체 투자는 계속 커졌다. 이건희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불황기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는 전략을 구사했다. 1980년대 말 반도체 가격이 폭락했을 때, 일본 경쟁사들은 감산에 들어갔다. 삼성은 오히려 공장을 늘렸다. 원가를 낮추고, 경쟁사가 쓰러지는 걸 지켜봤다. 그 결과가 1993년의 D램 세계 1위였다.

1938
이병철, 경남 마산에서 삼성상회 설립 (무역·청과물)
1953–54
제일제당(설탕), 제일모직(섬유) 창업 — 소비재 중심 성장
1969
삼성전자공업 설립, 흑백 TV·가전 생산 시작
1974
이건희, 사재로 부도 직전 한국반도체 인수 — 반도체 진출의 씨앗
1983.2
도쿄선언 — 이병철, 반도체 사업 진출 공식 선포
1983.12
64K D램 개발 성공 — 세계 3번째, 기술 격차 10년→4년으로 압축
1993
D램 세계 1위 등극 — 도쿄선언 10년 만의 결실
2000년대~
낸드플래시, 스마트폰 AP 등으로 영역 확장 — '반도체 제국' 완성
③ 전환점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은 삼성에 두 개의 사건이 겹쳤다. D램 세계 1위 달성. 그리고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세계 1위가 된 직후, 이건희는 전혀 다른 방향의 진단을 내렸다. "지금 삼성은 2류다. 양(量) 중심에서 질(質) 중심으로 바꾸지 않으면 곧 무너진다."

그 선언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세탁기 결함이 발견되자 공장 직원들을 운동장에 모아 세탁기를 불태워버렸다. 이 '화형식'이 삼성의 품질 DNA를 바꿨다는 평가가 있다. 1990년대 삼성 반도체의 '초격차' 전략 — 경쟁사보다 한 세대 빠른 기술 개발 — 이 자리를 잡은 것도 이 시기였다.

메모리 반도체의 특성상, 기술 세대가 바뀌면 판도가 뒤집힌다. 삼성은 경쟁사보다 먼저 다음 세대 제품을 내놓는 것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256K, 1M, 4M, 16M, 64M — D램 용량이 4배씩 늘어날 때마다 삼성은 '세계 최초'를 선점했다. 1990년대 일본 업체들이 하나둘 메모리 시장에서 철수한 배경에는 이 속도전이 있었다.

④ 2026 현재 비교 HBM 전쟁 — '메모리 종가'가 SK하이닉스에 밀린 현실
2026년 4월 현황 — AI 메모리 전쟁

30년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를 지켜온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는 이례적인 상황이 2024~2025년에 걸쳐 펼쳐졌다. HBM은 AI 가속기(엔비디아 GPU)에 탑재되는 핵심 메모리로, AI 시대의 '쌀'로 불린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62%, 마이크론 21%, 삼성전자 17%였다. 삼성은 HBM3E 인증이 1년 이상 지연되면서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주도권을 놓쳤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같은 분기 영업이익률 47%라는 '소프트웨어 기업급' 수익성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6년 들어 반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차세대 HBM4 양산을 2026년 2월로 앞당기며 반격에 나섰다. GTC 2026에서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삼성 부스를 찾아 HBM4 시제품에 직접 서명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2026년 HBM 매출이 전년 대비 189% 증가한 24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분 삼성전자 (DS부문) SK하이닉스
HBM 점유율
(2025년 2분기)
17%
HBM3E 인증 지연으로 부진
62%
엔비디아 핵심 공급사 지위
2026년 전략 HBM4 조기 진입·선단 공정 도입으로 반격 수율·안정성 강화, HBM4 70% 점유율 목표
2026년 예상
HBM 매출
약 24조 원 (전년 대비 +189%) 약 41조 원 (전년 대비 +상당폭 증가)
D램 생산 능력 월 70만 장 (업계 최대) 월 50만 장 (용인 클러스터 완공 시 90만 장)
투자 방향 평택 P4 라인, 미국 텍사스 파운드리 2나노 전환 청주 M15X 팹,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600조 원

시장 전체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2026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약 9,75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026년을 "1990년대 호황기와 유사한 슈퍼사이클"이라고 정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이 200조~300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아이러니한 지점이 있다. 1983년 도쿄선언 당시 이병철의 논리는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였다. 그리고 30년 후 SK하이닉스가 삼성에게 같은 논리를 적용했다. "삼성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다만 이번엔 삼성이 뒤를 쫓는 처지가 됐다.

⑤ 독자 시사점 그래서 우리는 어디를 봐야 하나
📌 투자자·직장인·일반 독자를 위한 시사점

첫째, 삼성의 반도체 위기는 '몰락'이 아니라 '경쟁'이다. HBM3E에서 뒤처졌지만, 삼성은 여전히 월 70만 장의 D램 생산능력을 가진 세계 최대 메모리 기업이다. HBM4에서 반격이 현실화한다면 판세는 다시 흔들릴 수 있다. 단기 점유율로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

둘째, '초격차'의 역설을 주목하라. 삼성이 HBM에서 뒤처진 이유 중 하나는 역설적으로 기존 D램 기술에서 너무 앞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존 강점이 새로운 도전에 대한 대응을 늦추는 경우 — 이건 기업뿐 아니라 개인의 커리어에도 적용되는 원리다.

셋째, AI 인프라 투자의 수혜는 반도체에서 시작된다. 어떤 AI 서비스든, 어떤 AI 칩이든 메모리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모두 AI 시대의 핵심 수혜주다. 중요한 건 어느 기업이 HBM4에서 인증을 먼저 따내느냐다. 2026년 하반기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다음 편 예고
EP03 — 현대의 돈
빚으로 쌓은 건설·자동차·조선 제국.
정주영이 영국 은행을 찾아가 5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보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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