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까지 전민동의 과거와 미래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잠시 멈춰서,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하려 합니다.
재건축 찬성도, 반대도 아닙니다. 그냥 여기 사는 사람으로서, 하루를 솔직하게 적어보는 시간입니다.
아침 7시 30분, 주차장에서
출근하려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어젯밤 늦게 귀가했던 탓에 자리를 못 찾아 지상에 댔는데, 밤새 이중주차된 차에 막혀 있습니다. 방송으로 차 빼달라는 안내가 흘러나옵니다. 이런 아침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됩니다.
세대당 주차 대수 1.19대. 1994년 준공 당시엔 당시 대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집에 차가 두 대인 게 흔한 세상이 됐습니다. 지하주차장은 1층뿐, 지상 주차도 한계가 있습니다.
오전 10시, 보일러실 앞에서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했습니다. 중앙난방이라 겨울엔 사용량과 무관하게 일정 금액이 청구됩니다. 낮에 집을 비워도, 잠깐 외출해도 기본료는 그대로입니다.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찬 바람에 보조 전기히터를 켜는 날이 늘었습니다.
중앙난방 방식은 1994년 당시엔 최신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신축 아파트가 개별난방으로 지어집니다. 내 마음대로 온도를 조절하고 싶을 때, 이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2020년 주민 설문조사에서 난방 방식 교체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지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오후 3시, 갑천 산책로에서
갑천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억새 사이로 오리 두 마리가 유유히 헤엄칩니다. 2·3단지에서 바라보는 이 풍경은 32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아름답습니다. 계족산이 뒤로 보이고, 갑천 폭이 넓어 하늘이 시원하게 열립니다. 이건 어느 새 아파트도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산책을 하면서 늘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 풍경은 재건축이 되든 안 되든 여기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걸 바라보는 집이 낡은 창문 너머냐, 새 창문 너머냐의 차이일 뿐이지요.
저녁 7시, 엘리베이터 안에서
2018년에 전면 교체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전에는 덜컹거리는 소리에 가슴이 내려앉던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조용합니다. 그래도 위층 가면서 귀가 멍한 건 여전합니다. 버튼 패널 가장자리는 낡아 테이프로 붙여놓은 곳이 있습니다.
밤 11시, 수도꼭지 앞에서
자려고 양치를 하다가 수도꼭지에서 잠깐 녹물 빛 물이 나왔습니다. 금방 맑아졌지만 마음은 찜찜합니다. 배관 노후화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얼마 전 아랫집에서 누수가 있었다는 공지가 붙었습니다. 32년 된 배관이 버텨주는 게 고맙습니다.
솔직하게 정리해봤습니다
이 아파트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불편한 것도, 여전히 좋은 것도 있습니다. 둘 다 사실입니다.
- 단지 내 녹지, 숲속 같은 분위기
- 갑천 천변의 탁 트인 조망
- 엑스포코아 생활 인프라
- 전민초·전민중 단지 내 학교
- 탄탄한 건물 구조, 알크벽체 단열
- 30년 쌓인 생활공동체
- 세대당 1.19대, 이중주차 빈번
- 중앙난방, 개별 온도 조절 불가
- 32년 배관, 간헐적 누수·녹물
- 지하주차장 단층 구조 한계
- 버스 배차 15~40분, 교통 불편
- 관리비 매년 소폭 증가 추세
좋은 것들은 오래됐기 때문에 있는 것들이고, 불편한 것들도 오래됐기 때문에 생긴 것들입니다. 시간은 어느 한쪽 편만 들지 않습니다.
"불편함이 쌓인다는 건
그만큼 오래 함께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집을 사랑했기 때문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이 글을 쓴 이유
재건축을 설득하려고 이 글을 쓴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어디 서 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입니다.
찬성하시는 분은 이 불편함들을 바꾸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반대하시는 분은 이 좋은 것들을 잃기 싫어서일 것입니다. 둘 다 이 아파트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같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본격적으로 재건축이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설득이 아니라 정보입니다. 알고 결정하시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