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우리가 이 아파트를 선택했던 이유를 돌아봤고, 2편에서는 반대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들어봤습니다. 오늘 3편에서는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려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시대와 함께 태어났는지를 되짚어보면 — 지금 우리가 선 자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일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 — 1993년 여름
1993년 8월 7일, 대전 도룡지구에서 세계가 모였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끝난 지 불과 5년 만이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이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 엑스포를 개최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1893년 시카고 엑스포에 기와집 몇 채를 전시하며 처음 참가했던 그로부터 꼭 10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33개 국제기구
국민 3명 중 1명꼴
8월 7일 ~ 11월 7일
총 투자 규모
하루 평균 15만 6천 명, 최다 관람일에는 2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땅을 밟았습니다. 자기부상열차, 태양열 자동차, 최첨단 컴퓨터 정보 시스템 — 당시로서는 꿈같은 기술들이 대전 하늘 아래서 처음 공개됐습니다.
그 엑스포의 행사 요원과 방문객들이 머물렀던 숙소가 바로 '엑스포타운', 지금의 엑스포아파트였습니다.
엑스포가 낳은 아파트
엑스포아파트는 처음부터 세계를 향해 지어진 공간이었습니다. 외국 기업이 설계하고 국내 유명 건설사들이 시공했습니다. 당시 '첨단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엑스포 출품작으로 선정됐을 만큼, 이 건물 자체가 하나의 전시물이었습니다.
화재·가스 누출 자동 감지 홈오토메이션, 현관 비디오폰, 자동 감지 현관등이 모든 세대에 설치됐습니다. 특수 단열 소재 '알크벽체'로 에너지 효율을 높였고, 엑스포코아 최상층에는 볼링장과 수영장까지 갖췄습니다. 무거운 수영장을 건물 꼭대기에 올릴 수 있을 만큼 구조적으로 탄탄하게 지어진 아파트였습니다.
엑스포가 끝난 뒤 보수를 마치고, 1994년 2월 '엑스포아파트'라는 이름으로 일반 분양자들이 입주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10월, 이 아파트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설 기술력을 세계에 증명했던 그 자부심,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 아파트가 걸어온 30년
분양 당시 대전 최고가 아파트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서울에 분양사무소를 낼 만큼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KAIST 교수, 정부대전청사 공직자 등 이른바 '지식 엘리트'들이 모여드는 대전 명품 주거지로 자리잡았습니다. 전민동은 2000년대 중반 전국 고소득지역 Top 20에 비수도권 유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전민초·전민중이 자리잡고, 아이들이 자라고, 이웃이 되었습니다. 엑스포코아는 대전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생활 중심지가 됐습니다. 단지 안 녹지는 무성해졌고, 숲속을 걷는 것 같다는 말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갑천 천변 뷰를 가진 2·3단지는 대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망을 자랑하는 세대로 꼽혔습니다.
2019년 3분기, 전국 모든 아파트 단지 중 거래량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노후화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리모델링이냐 재건축이냐 — 주민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2020년 북쪽에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2021년 남쪽에 대전신세계가 잇따라 문을 열었습니다. 단지 주변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2022년 리모델링 추진위가 출범했다가, 2024년 정부의 재건축 패스트트랙 제도 시행과 함께 방향을 재건축으로 틀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30년 역사의 가장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이 아파트가 우리에게 준 것들
숫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매일 마주쳤던 이웃, 명절이면 줄을 서던 엑스포코아 지하 반찬가게, 아이들이 뛰어놀던 단지 안 공원, 퇴근길에 바라보던 갑천의 노을 — 이 30년이 단순히 '집에 사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아파트는 집이기 전에
우리의 삶터였고, 공동체였습니다."
그래서 재건축 이야기가 나올 때 단순히 집값 계산만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겁니다. 30년을 함께 살아온 이 공간에 대한 감정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까요.
찬성이든 반대든, 그 마음의 바닥에는 이 단지에 대한 애정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우리 이웃들이 왜 하나둘 떠났는지, 그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보겠습니다.